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양준혁/논란 및 사건사고 (문단 편집) === 삼성과의 사전 접촉 의혹과 신인 지명 회피 및 "양준혁 규정" === 지명 규정을 피해 상무 입대를 택하면서 [[삼성 라이온즈]]로부터 월급을 받는 탈법적인 방법을 통해 [[삼성 라이온즈]]에 2년 후 입단한 사건이다. [[삼성 라이온즈]]는 1991년 말에 열린 1992 신인 1차 지명에서 연고선수 중 좌완 투수 [[김태한]]을 택하면서 차후 양준혁에게 1차 지명을 약속했다. 한편 양준혁이 2차 지명에 나오게 되자 당시 2차 1라운드 1순위 지명권을 갖고 있던 [[OB 베어스]]는 당연히 양준혁을 지명하려 했으나,[* 후술하겠지만 스톡킹에 직접 나와 한 얘기에 따르면, OB측에서 백지 수표와 아파트를 준비했었다고 한다. OB에서는 5억까지 준비했었다고. 다만 당시에는 삼성에 대한 충성심이 높아 거절하고 군대에 갔다고 밝힌 바 있다. 이어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그런 선택을 못할것 같다고 밝혔다.] 2차 지명을 앞두고 양준혁이 자신은 상무에 입대하기로 결정했으며 당분간 프로 입단을 미루겠다고 말하면서 결국 OB는 양준혁의 지명을 포기했다. 그러면서 양준혁이 상무 입대를 고집하는 이유가 삼성과 모종의 합의 때문이었다는 사실이 공공연히 퍼지면서 1992 신인 2차 지명에서 어떠한 구단도 1라운드에서 양준혁을 지명하지 않았다. 다만 [[쌍방울 레이더스]]가 '아무리 선수가 프로 입단을 거부한다 하더라고 지명조차 포기하는 건 프로 구단다운 태도가 아니지 않느냐' 라면서 2차 2라운드에서 양준혁을 지명했다. 쌍방울 역시 양준혁에게 후한 대우를 해주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양준혁은 공언한대로 상무행을 택했고, 이후 1992년 말에 열린 1993년 신인 1차 지명을 통해 삼성에 입단했다. 양준혁의 고향 사랑의 예로 여겨지기도 하며, 일부 팬들은 이를 두고 "푸른 피가 흐른다" 라며 칭송하기도 한다. 양준혁 본인도 [[무릎팍도사]]에 출연, 삼성에 대한 애정을 얘기하며 이 일화를 자랑스럽게 언급했다. 하지만 쌍방울 입장에서는 자기 픽만 날린 황당한 사건이라는 것. 신생팀 쌍방울은 그 귀중한 픽을 날려버렸고 쌍방울 팬들에게 원성을 들었다. 이 사건 이후 KBO는 신인 지명 규정을 손보게 되는데, '타 팀의 2차 지명을 받은 선수는 이후 연고 구단의 1차 지명을 받을 수 없다'는 이른바 "양준혁 규정"을 신설하였다. 또한 기존 2차 지명의 보유권을 1년에서 3년으로 늘렸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2년으로 조금 줄였다. 이 사건의 문제점은 선수 영입의 근간을 방해하는 사전 영입이 이루어졌다는 것과 월급조로 월 100만원씩 받았다는 것. 더 심각한 것은 군복무 도중 무소속임에도 불구하고 삼성으로부터 월 100만원씩 수령했다는 것. 양준혁의 계약금인 1억원[* 양준혁의 계약금은 1억 1200만원으로 알려져 있지만, 당시에는 계약금과 연봉을 합쳐 발표했다. 실제 계약금은 1억원이었고 연봉은 당시 신인 선수 연봉인 1200만원으로 발표했지만 실제로는 1800만원이었다.]에 비하면, 용돈 수준의 푼돈일 수 있으나, 사전 입단 합의가 된 미입단 선수에게 정기적으로 돈을 지급했다는 것부터 사전 접촉과 금전지급은 규정상으로 선수는 영구제명, 구단은 1차지명 또는 2차지명에서 금지를 받을만한 중징계 대상이다. 다시 말해 당시 KBO가 '''규정을 엄격하게 적용했다면''' 지금 우리가 기억하는 선수 '양준혁'은 존재하지 않았을 거라는 사실. 또한, 애초 방위병 판정을 받은 양준혁이 굳이 상무에서 복무한 것도 그렇고[* 물론 1994년까지 상무는 6개월 및 18개월 방위 판정을 받은 선수의 복무가 가능했다. 1995년 병역 제도가 변경되면서 상무는 현역 자원 및 신장과 체중으로 인해 보충역 판정을 받은 선수들만 받게 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보충역 판정을 받고 군 복무를 뒤로 미루고 있던 1974년생까지의 선수들 상당수가 공익요원 복무를 하게 된다.], 당시의 방위 복무 기간인 18개월이라면 양준혁이 다시 신인드래프트에 나오려면 제대한 후 6개월이 지난 1994년이 되어야 했다. 하지만 삼성은 1993년 드래프트에서 아직 제대가 6개월이나 남은 그를 지명이 가능하다는 유권 해석을 거쳐 1차 지명으로 선택했다. 그러면서 양준혁은 수도권에 위치하던 상무를 1년만에 퇴단하고 대구로 주소를 옮겨 방위병 생활을 계속했다. 어떻게 상무라는 군 기관의 퇴단이 쉽게 가능했으며[* 상무에서 퇴단해 일반병으로 전출되는 경우는 부대 간부나 코칭 스태프에게 찍히거나([[안양 KGC인삼공사|SBS 농구단]]의 창단 멤버였던 박성수, 전 [[NC 다이노스]] 포수 [[이태원(야구선수)|이태원]]이 이런 케이스), 심한 부상으로 상무 내에서 재활 및 치료가 불가능한 경우(대표적으로 [[윤길현]])에 한정된다.] 방위 복무 중에 주소를 옮겨 근무지를 바꾸는 게 가능했던 것일까. 2021년 10월 [[스톡킹]]에 출연했을 때 아파트 제공 조건을 제시한건 OB였다고 말했으며, 상무에서 방위병으로 복무한 것과 근무지를 옮긴 이야기 그리고 월 100만원씩 받은 이야기는 아예 언급하지 않았다. 심증만 있을 뿐 물증이 없었으므로 유야무야 넘어가는 듯 싶었던 해당 사건은 후일 양준혁이 해태로 트레이드되었을 당시 스스로 과거 삼성 입단 과정을 이야기하면서 다시 수면 위로 드러났다. 1991년 삼성이 일단 급한 투수를 보강하기 위해 김태한을 1차 지명한 후, 자신을 1차 지명하기 위해 군에 입대하도록 권유했었다는 사실을 선수 본인이 직접 이야기한 것. 따지면 규정 외의 사전접촉 및 구두 계약이라고 볼 수 있으니 문제가 되는 발언으로, 당시 쌍방울이 양준혁을 2차 지명하면서 백지 수표와 48평 아파트를 제의했지만 거절했으며, '삼성의 권유대로 상무에 입대하고 난 뒤 월급조로 삼성으로부터 매달 100만 원씩을 받았다'는 사실도 함께 밝혔다. 이러한 일이 있은 후 해태의 [[김응용]] 감독은 "양준혁을 회유하여 팀에 입단하게 한 삼성의 행위를 문제 삼기 위해 구단이 직접 행동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당시 양준혁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던 해태는 '양준혁의 삼성 입단은 명백한 규약 위반이다'라며 문제를 제기하였고, 이에 KBO는 삼성에 1993년 양준혁의 입단경위서 제출을 요구했다. 삼성은 이러한 의혹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다가 "오래된 일이라 자세히 생각나지 않고, 경리 장부에 매월 100만 원의 지출 내역이 있는지 확실치 않다. 일단 확인 작업을 거치겠다"라는 입장을 밝혔으나, 이 역시 유야무야 넘어가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